황산벌 전투, 의자왕, 백제 멸망


황산벌 전투 – 오승우의 국립다큐멘터리 회화

신라는 백제를 무찌르고 한강 유역 전체를 점령하여 고구려와 백제를 적으로 만들었다. 한편 백제는 신라의 대야성을 빼앗고 고구려와 손잡고 신라가 당과 소통하던 통로인 당항성을 공격하기까지 했다. 강력한 위협을 감지한 신라는 살아남기 위해 당나라에 합류한다. 백제 사람들은 무왕과 의자왕이 여론을 외면한 이후 여러 차례 신라와의 전쟁으로 절망에 빠졌다. 계백장군은 신라당 연합군의 공격에 저항하기 위해 5,000명의 결사대를 편성했으나 사비성이 함락되고 당나라의 의자왕과 왕실, 귀족, 평민 등 12,000명이 전사했다.

1. 신라 김춘추의 외교전쟁

642년 백제의 의자왕 정윤은 신라 서부 지역의 요충지인 대야성을 공격하라고 명령했다. 대야성의 주인은 김춘추의 사위인 김품석으로, 이전에 여자를 강제로 남편과 결혼시켰다. 남편은 거밀이라는 사람으로 항상 원한을 품고 있었으나 백제군이 쳐들어오자 백제와 모반하여 성에 불을 질렀고 대야성은 백제의 손에 넘어갔다. 김품석은 아내, 가족과 함께 자살하고 김춘추는 그 소식을 듣고 큰 충격을 받는다. 신라는 외교를 통해 이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고구려와 힘을 합치려 했다. 김춘추는 사신으로 나가 연개소문을 만나지만 상당히 감금되어 있다. 그녀는 고구려의 고위 관리인 선도해에게 뇌물을 주었고, 그는 왕을 설득하여 거짓말 속에서 신라 땅을 돌려주겠다며 그에게 역사의 실마리를 주겠다고 도망친다. 준다. 김유신은 죽음의 분대를 준비한 뒤 고구려 국경을 넘어 김춘추를 무사히 데려왔다. 이에 648년 김춘추는 당태종에게 지원을 요청하였다. 당나라도 고구려를 정복하려는 야심과 양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기뻐했다. 신라는 백제가 먼저 패해야 고구려를 정복할 수 있다고 단호하게 당나라와의 외교에 적극 나섰다. 결국 신라와 당나라가 힘을 합쳐 백제를 공격한다.

2. 의자왕의 횡포

의자왕은 세자시절부터 부모와 형제 사이에 효도와 우의가 두터웠고, 백성의 생계를 먼저 생각했기 때문에 ‘해동증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러나 왕위에 오른 후 사치와 향락에 빠지고 그 정도가 점차 커져 추종자들을 걱정시켰다. 백제의 충신 성충은 의자왕에게 직접 말을 했다. “신라와 당이 손을 잡고 우리나라를 치려고 준비하고 있으니 부디 정신을 차려 국방에 힘쓰고 민생을 돌보아 주십시오.” 의리파 홍수도 직접 발언해 추방당했다. 657년경부터 백제에서는 여러 가지 기이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들떠 있었다. 건조한 날이라 땅이 갈라지고 붉게 물들었습니다. 오사라는 절에 붉은 말이 나타났다. 사비성의 모든 우물물이 피로 물들었습니다. 수만 마리의 두꺼비와 개구리가 나무에 모여들었습니다. 또 궁궐에 귀신이 나타나 백제가 죽는다고 외치더니 땅 속으로 사라졌다. 그가 땅을 파다가 거북이 등에서 글을 발견했습니다. “백제는 둥근 달이고 신라는 초승달이다.” 가득 차면 백제가 망하고 신라가 흥왕할 것이라고 하여 의자왕이 처형하였다. 신하들은 왕을 노엽게 하지 않으려고 마음에 드는 말만 했습니다. 의자왕의 폭정은 백제를 멸망시킨 측이 백제 정복을 정당화하기 위해 날조한 문서라는 말도 있다.

3. 황산벌·계백·관창·백제 전투

660년 당고종은 소정방에게 13만 대군을 이끌고 백제를 공격하라고 명령했다. 신라 김유신은 보급을 맡은 5만 명의 병사를 거느리고 당군을 지원하기로 했다. 의자왕은 급히 대책을 마련하려 했지만, 대신들은 논쟁을 멈추지 않고 각자의 득실 계산에만 몰두했다. 왕은 계백에게 자신을 지키라고 명령했다. 목숨을 걸고 신라를 저지할 수 있는 암살단을 조직한 계백은 가족의 목숨을 앗아가기로 결심했다. 김유신의 신라군에게 열세였음에도 불구하고 백제의 죽음의 분대와의 전투에서 계속 패배했다. 신라 김흠춘은 화랑인 아들 반굴을 불러 백제군을 공격하게 했다. 참혹하게 살해당했지만 신라군의 사기는 좀처럼 오르지 않았다. 김유신은 떠날 때까지 떠나고 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답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번에 김품일은 역시 화랑이었던 16세 아들에게 그 일을 위임했다. 백제는 너무 어려서 응하지 않았지만, 관창의 끊임없는 도발에 붙잡혀 쫓겨났다. 그러나 이를 부끄러워한 관창이 다시 나타나 그를 체포하려 하고, 계백은 그것이 신라 수뇌부가 바라는 바임을 알지만 자신의 숙명을 직감하고 관창을 처형하고 다시 말에 태운다. 두 젊은 화랑의 숭고한 죽음을 목격한 신라군은 깨어나 백제군에 대한 전면전을 벌인다. 백제의 5천 결사군단은 모두 드넓은 황산벌에서 생을 마감한다. 의자왕은 세자에게 가문을 지키라고 명했고, 자신의 미래를 앞당기기 위해 웅진으로 피신했다. 그러나 사비는 급히 사로잡혔고 웅진성주의 왕 예식진은 사비를 배신하고 닷새 만에 웅진에 입성했다.